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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경향] [유인경이 만난 사람]조동성 중국 장강상학원 교수 “앞으로 500년 중국 모르면 성공 못해”

2019년 7월 31일 업데이트됨

(본 글은 주간경향에 실린 기사를 옮겨온 것으로 원문은 아래 링크에 게재되었습니다. http://weekly.khan.co.kr/khnm.html mode=view&code=115&artid=201410211452481&pt=nv)


산업정책연구원(IPS) 명예이사장, 한국오페라단 이사, 핀란드 명예총영사, 코리아오토포럼 회장, 국제백신연구소 후원회장, 안중근의사기념관 관장, K-리그 이사, 세계은행 자문, 61권의 저서와 95편의 학술논문 출판, 전략경영학회 창립회장, 디자인브랜드경영학회 창립회장, 지속경영학회 창립회장, 경영학회 회장, 학술단체총연합회 회장, 소설가이자 발레리노….

조동성 서울대 명예교수의 이력서를 보면 ‘어떻게 한 사람이 이토록 다양한 분야에서 활약할 수 있을까’라는 경이로움에 입을 다물지 못한다. 그의 이력서에 또 하나의 이력이 추가됐다. 그가 최근 중국의 CKGSB(장강상학원) 전략학 교수로 또 다른 변신을 한 것이다. 서울대를 정년 퇴임한 65세에 중국으로 떠난 이유는 무엇이고, 중국에서 우리는 무엇을 배워야 할지 궁금해 모처럼 한국에 있는 조동성 교수를 만났다.


지금 왜 중국을 선택했습니까. 잠시 방문하는 것도 아니고 왜 중국에서 5년간 전임교수로 머물 계약을 했는지요. “1990년부터 중국에 관심을 갖고 교류를 해왔어요. 새로운 일은 아닙니다. 제 자랑 같지만 제가 주제를 선택해 연구하면 당시엔 다들 비웃거나 이상하게 생각하는 이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종합무역상사, 재벌, 디자인 등등이 그랬지요. 그런데 빠르면 3년, 늦으면 5년 후에는 그 분야가 꼭 각광을 받더군요. 중국도 마찬가지입니다. 25년간 수시로 찾고 사람들을 만나고 공부한 결과입니다. 현재 우리에게 중국의 위상은 무서운 경쟁자이자 최대 고객, 즉 시장 또는 파트너입니다. 더없이 중요한 나라입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유일하게 중국과 같은 성을 쓰고 있는 나라로 특별한 연대를 형성할 수 있는 장점이 있습니다. 이런 나라를 멀뚱히 바라만 보고 있는 것은 난센스죠. 중국 이상으로 시대의 큰 트렌드를 함께할 나라는 없습니다. 앞으로 500년 정도는 중국을 모르면 성공할 수 없습니다. 사대주의라고 비판하기보다 우리의 주체성을 잃지 않으면서 인접국가인 중국을 활용하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중국에서 성공하려면 열정이나 노력보다는 중국인들과의 관계, 즉 ‘관시’가 중요하다고 합니다. 그것이 잠시 머물거나 공부한다고 가능한가요. “얼마 전에도 한 세미나에서 ‘New China, New Global Standard’를 주제로 특강을 했습니다. 우리 중견기업들이 중국에 진출할 때 가장 어려워하는 부분이 ‘관시’죠. 중국의 ‘관시’(關係)와 한국의 ‘연줄’을 출발점, 지속성, 진행방향, 효과 측면에서 비교·분석할 필요가 있습니다. 혈연·지연·학연 중심의 과거지향적인 한국의 연줄에 비해 중국의 ‘관시’는 삼국지의 도원결의와 같이 미래지향적 요소가 우선이기 때문에 실수하지 않고 살얼음판을 밟듯이 신중하게 진행해야 합니다. 우리는 학연·지연 등의 깊은 뿌리가 있으니 술 마시다 실수하고, 싸움을 해도 너그럽게 용서를 해줍니다. 하지만 중국과는 그런 뿌리가 없어요. 실수하면 절대 안 됩니다. 친하다고 긴장을 풀지 말라는 뜻입니다.

관시는 약속이니 약속을 잘 지키면 됩니다. 흔히 중국에 진출했다가 중국인에게 배신당했다는 이들, 실패한 이들을 보면 실상은 자신들이 먼저 실수를 하거나 약속을 깬 경우가 많습니다. 13억 인구, 한국의 93배 면적, 7000년의 역사를 갖춘 중국은 경쟁자, 거대한 시장, 파트너, 이웃사촌, 친척의 성격을 모두 갖추고 있습니다. 완벽하게 준비해서 중국 시장에 진출하겠다는 생각보다는 중국을 배우고 중국인들과 함께하며 새로운 기회를 잡아나가겠다는 전략이 바람직합니다. 한국인들은 중국에 대해 많이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그 착각이 중국 비즈니스에서 얼마나 큰 장애와 실패 요인이 되는지 모릅니다. 저만 해도 한문을 잘 알고 발음도 비슷한 것이 많으니까 서양인에 비해 중국어를 쉽게 배울 거라고 착각했는데 절대 그렇지 않아요. 막연히 비슷하다는 생각이 오히려 방해요소가 되더군요. 또 혈연·지연·학연 등 이른바 ‘연줄’이라는 문화가 없는 외국의 사업가들은 관시를 맺는 데 매우 신중하지만, 연줄 문화에 익숙한 한국 사업가들은 관시를 연줄 문화와 비슷한 것으로 오해해 더 많은 실수를 범하게 됩니다. 중국인들과 시간을 갖고 진심과 진정성을 보여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교수님은 어떻게 관시를 맺고 활용했나요. “한·중수교를 맺기 2년 전인 1990년, 중국의 동북재경대학에서 강의를 해달라고 연락이 왔습니다. 그때만 해도 중국이 지금처럼 여유롭지가 못했습니다. 돈이 없으니까 강사료를 못 주겠다고 했습니다. 그래도 가서 강의를 했습니다. 이들이 나를 빈손으로 보내기 뭐 했는지 선물을 주겠다고 하더군요. 가고 싶은 곳을 구경시켜 주겠다고 해서 백두산 천지를 가자고 했습니다. 천지에 가서 팬티까지 벗고 수영을 했습니다. 제겐 충격적 체험이었습니다. 그 후 170번 정도 중국에 갔습니다. 즉 1년에 7~8번 중국에 간 겁니다. 많으면 열 번도 갔고요. 중국에 갈 기회만 있으면 무조건 갔습니다. 그리고 제가 연구하는 종합상사, 재벌, 국가경영, 디자인에 대한 지식과 안목을 나눴습니다. 중국의 관시는 호수에 돌을 던지면 일어나는 파장처럼 횡적으로 넓어집니다. 무료로 강의를 하면 공짜 관광을 시켜주고 식사에 자신들의 친구를 소개하는 자리를 마련합니다. 덕분에 중국의 장관급들과 인연을 맺고 대학이나 관청들이 주최하는 콘퍼런스, 포럼에도 참여하게 됐지요. 그 후광 때문인지 중국에서는 제가 대단한 인물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CKGSB(장강상학원)에는 왜 가셨나요. “CKGSB는 아시아 최고 부호인 리카싱 청쿵그룹 회장의 리카싱재단이 지난 2002년 설립한 중국 최초의 비영리 사립 경영대학원입니다. MBA, EMBA(Executive MBA), FMBA(Finance MBA), 최고경영자 과정 등의 교육 프로그램을 제공하죠. 하버드대, 예일대, 컬럼비아대, 프린스턴대, MIT, 버클리대 등 미국 및 유럽 최고의 대학에서 종신 교수직을 역임한 세계적인 석학들로 교수진이 구성돼 있습니다. 베이징, 상하이, 선전에 캠퍼스를, 홍콩과 뉴욕, 런던에 해외 오피스를 운영 중입니다. 이곳에서는 국제적 능력이 있는 인재를 배출해 중국 기업을 세계화하려는 것이 목적이 아닙니다. 이 학교의 목적은 세계 기업을 중국화하고 중국의 역사와 문화에 맞는 방식으로 시스템화하려는 것입니다. 꼼수가 아니라 큰 그림을 갖고 문을 열어놓은 것입니다. 이 학교는 등록금도 비싸고, 입학절차도 복잡하지만 일단 입학하면 세계 최고의 인맥과 기회를 얻게 됩니다. 저는 5년 동안 이곳에서 MBA 과정을 맡아 제 전공인 메커니즘은 물론 전략학을 가르칩니다. CKGSB는 한국의 우수한 인재를 영입하려는 취지로 다양한 장학금 제도를 운영하고 있어요. ‘CKGSB 장보고 장학금’을 통해 매년 1명의 한국 학생을 선발, MBA 등록금을 전액 지원하고 있으니 도전해보시기 바랍니다.”


중국의 비상은 우리에게 기회이기도 하지만 위기이기도 합니다. 요우커들이 몰려와 경제에 보탬이 되지만 세계 시장에서 중국산 가전제품 등이 우리 상품과 시장을 잠식하기도 하고요. 특히 북한과의 관계나 과거 동북공정 등을 생각하면 공포심까지 느껴집니다.

“중국의 역사를 보면 일부러 나가 싸우는 것이 아니라 항상 가만히 있다가 잡아먹습니다. 마치 하마가 크게 입을 벌리고만 있다가 들어오는 벌레를 잡아먹듯이요. 우리는 중국을 의심만 할 것이 아니라 전략을 가져야 합니다. 중국과 차별화되는 실력, 능력을 강화하는 것이 살 길입니다. 핀란드를 보세요. 냉전체제 시절 서구와 동구의 무역이 급증할 때 핀란드는 중립을 표방하고 중개무역으로 승부했습니다. 그리고 IT 디자인으로 세계적인 명성과 힘을 누리게 됐습니다. 러시아가 3억 인구인데 핀란드는 600만이에요. 핀란드는 러시아에 먹힐 것을 걱정하지 않았습니다. 자신들의 역량을 키워 러시아와의 싸움이 아니라 세계 시장에서 승부했죠.”

앞서 관심을 갖고 연구하면 몇 년 뒤에 뜬다고 했는데 그 비결이 뭔지요. 직관력입니까, 아니면 트렌드를 읽는 노력을 따로 합니까.

“매사 호기심, 이해관계 없는 순수한 호기심이 전제돼야 합니다. ‘이 연구를 하면 각광받겠다, 연구 프로젝트가 생기겠다’가 아니라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났을까, 그럼 지금 공부할 분야는 무엇인가’처럼 순수한 마음과 눈으로 봐야 합니다. 제가 윤리경영의 창시자라고 할 수 있는데요. 1997년 IMF 외환위기가 왔을 때 원인을 분석해보니 기업의 투명성이 너무 낮았어요. 그래서 윤리경영이 기업의 핵심 가치이고 경쟁력의 원천이라고 주장했지만 아무도 따라오지 않고 동의조차 않더군요. 저 역시 학교 도덕시간에 졸기만 했지만 21세기가 되면 더더욱 투명성, 윤리경영이 중요할 것이라는 생각에 윤리경영 포럼을 만들어 최후 보루가 되는 CEO들에게 강조를 했습니다. 종합상사도 그렇고, 재벌의 승계 문제도 그렇고, 먼저 선점하면 경쟁력이 커지고 수익도 따라옵니다. 어려운 문제일수록 쉽게 접근하는 것, 가감승제(더하기, 빼기, 곱하기, 나누기)의 방법으로 보는 훈련도 필요하죠. 파괴는 빼기, 융합은 곱하기 등등….”

서울대 교수 시절 강의방식도 독특하다고 소문났었는데요.

“2009년 환갑이 돼선 기존 강의 주제를 모두 버렸습니다. 강의 내용은 딱 두 개로 정리했습니다. 첫째가 창조였고, 둘째가 나눔이었습니다. 두 과목을 맡아 창조적인 발상과 따뜻한 마음을 각각 강의했어요. 창조 강의에서 학생들에게 자기 인생을 3분짜리 단편영화로 만들라고 시켰습니다. 또 책을 던져주고 그 속에서 스토리를 뽑아 조별로 연극을 하게 했죠. 음대 교수한테 작곡법을 3시간 배우도록 한 뒤 뮤지컬도 제작하게 했습니다. 그러는 와중에 가끔 ‘대기업 인재육성 전략’ 같은 걸 과제로 냈죠. 신기한 점은 학생들이 예술활동에서 얻은 경험을 바탕으로 다양한 경영학적 솔루션을 낸다는 겁니다.

한 학생이 이러더군요. ‘저는 교수님 강의 듣기 전엔 5000만명 국민 중에 50만명의 예술가와 4950만명의 관객이 있다고 생각했는데, 이젠 4950만명의 예술가와 예술을 가르쳐주는 50만명의 기술자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어요’라고요. 학생들에게 본인의 나눔 인생을 단편영화로 만들어오라고 했습니다. 그 중 한 학생이 재즈밴드 얘기를 다룬 게 참 인상적이었습니다. 재즈밴드는 악보가 있긴 한데 절대 악보대로 연주하지 않는다고 하더군요. 그날그날의 상황과 멤버들의 컨디션에 따라 서로 연주 내용을 조절한답니다. 동료의 건강과 심리상태가 남의 문제가 아니라 본인 일이 되는 거죠. 상대를 배려하지 않으면 창조라는 것도 나오지 않습니다. 예술이라는 뿌리에서 창조와 나눔이 함께 나온다는 사실을 깨닫게 됐습니다. 결국 우리의 미래도 창조와 나눔에 달려 있습니다.”

아무리 중국이 엄청난 연구과제이자 보고이고, 한국인들에게 기회를 주고 싶다는 큰 뜻도 알겠지만 65세에 또다시 도전하는 것이 두렵지 않습니까.

“그동안 중국에 다닌 지는 오래됐지만 중국에 며칠씩 다니면서는 중국에 ‘갔다왔다’는 생각을 했지 중국에 ‘왔다’는 생각은 없었거든요. 그런데 2년 전 중국어를 배우려고 학생으로 공부하며 기숙사 방에서 등을 대고 창밖을 보다가 ‘진짜 중국에 왔구나’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동안 한국에서의 내 모습이 콩알로 보였습니다. 중국과 한국의 스케일 차이가 느껴지기 시작했습니다. ‘아, 내 삶에서 연습문제를 끝내고 진짜 무대로 왔구나’란 느낌이 들면서 가슴이 벅찼습니다. 저는 지난 65년 동안 한국에서 연습문제를 풀었던 것 같습니다. 한국에서 연습한 것을 가지고 중국에서 꽃을 피워야지요. 65세는 새 인생을 시작하기 아주 적절한 나이 아닐까요?”

조동성 교수는 수시로 강단이나 포럼의 사회를 보고 과거 이화여대에서 발레리노로 무대에 서기도 하는 등 ‘무대’에 익숙하다. 하지만 중국이야말로 자신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무대라고 한다. 65세에 또 다른 도전에 나서는 그의 끝없는 호기심과 노력이 부럽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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